1.1. 연구배경
대다수의 현대 문명 국가에서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채택해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걸어온 역사를 살펴보면 정권이 주장하는 바와 정책이 늘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지난 몇년간 스페인, 그리스, 홍콩 등지에서 민중(民衆)으로 부터 시작된 항쟁(抗爭)을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2016년 한국사회에서 벌어졌던 거대한 촛불의 물결은 비폭력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시민의 대표성이 없는 부패한 정부를 끌어내리고 보다 민주적이고 시민을 대표하는 정부로 바꾸어내는 성과를 이끌어 내었다. 이처럼 전세계 여러지역에서 일어나는 항쟁은 시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민주주의와 현실에서 작동되는 민주주의의 간극(間隙, gap)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다.
“21세기의 시민인 우리는, 15세기의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19세기에 만들어진 정치제도에 맞추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러한 정치 시스템에서 우리는 권력자들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에 대해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습니다(Pia Mancini, 2014)1.”
만시니는 시대에 뒤처지는 정치제도와 정보기술이 민주주의의 간극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 21세기에 맞는 의사결정을 위한 대안적 방법을 찾는 실험들이 시도 되고 있다. 2016년 5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D-cent가 주관한 “민주적 도시(democratic cities)” 컨퍼런스를 통해 3년간 진행했던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프로젝트 결실들이 소개되었다. 특히 민주적 시스템을 만드는 기술과 도구를 오픈소스 프로그램과 분산화 되어있는 개인화 된 툴로 개발되어 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는 세계적 미래학자들이 주장한 디지털 기술과 직접민주주의가 결합한 ‘디지털 민주주의(digital cracy)’시대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새로운 사회와 정부의 모델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1.1. 문제제기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서구의 민주주의와는 태생적으로 서로 다른 문화기반에서 발전했다.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발전시켜왔기에 서구사회가 수백년에 걸쳐 이룩한 민주주의의 과정들이 생략된 채 제도적 민주주의로 가는 것을 목표로 사회활동이 전개되었다. 따라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룩했으나 생활 속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것은 민주화라는 것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마을에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데에 실패한 것으로 부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원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 문화적으로 민주주의를 학습하지 못한 한국인
- 개인이 탄생하지 못한 사회 (우리사회는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아왔기 때문에 타율적으로 살아왔다.)
- 계급화 된 사회 (계급화되지 않은 집단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기 어려움. 하물며 초등학교도 계급화되었음)
- 토론하지 못하는 문화(지시, 명령, 통제로 운영되는 국가 시스템)
- 협력의 패러다임 (연대와 보충, 대화와 토론, 합의와 실행)을 경험해보지 못함
- 사회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집단으로 고치려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동료에 의한 사회적 압력이 없는 사회)
위와 같은 이유로 한국사회에서 앞으로 민주주의가 체화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회운동가들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거대 담론을 인식의 변화로 이끄는 것은 활동가의 신념만으로 해결하기 불가능한 영역이고 한계에 부딪쳐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 수 있다. 그 실패로 부터 얻은 교훈은 '우리나라는 안돼'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인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민주주의를 학습한 경험이 있다. 그것은 디지털 환경으로 부터 찾을 근거가 있다. 이미 우리는 촛불혁명을 온라인 공간에서 논의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성공의 경험을 해본 바 있다. 또한 오픈소스 문화나 위키 애자일 문화는 개발자들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러한 수평적 문화는 그들이 만드는 서비스에 상당히 녹아 있으며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그 문화에 적응하고 있고 진화하고 있다. 1인 미디어가 보편화되어 개인으로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의 늘어난 점도 주목되는 특징이다. 소위 미디어 시민이라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그들이 생산한 컨텐츠를 소비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평등한 구조를 지향하는 플랫폼(주로 익명이거나 유머커뮤니티)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료에 의한 사회적 압력은 온라인에서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각종 혐오범죄들이나 갑질논란 이러한 것은 온라인에서 재조명되고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이 느리지만 분명 진보하고 있고 더구나 기술과 인프라가 갖춰진 현 상황에서 사용자들의 경험을 디자인해준다면 협력의 패러다임으로 인도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 삶에 서서히 민주주의가 녹아든다면 계급화 된 사회도 점점 우리에게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1.1.2. 연구의 필요성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에 관련된 선행연구는 주로 인문 사회분야에서 ‘전자 민주주의’, ‘사이버 민주주의’, ‘디지털 컨버전스 환경’과 같은 키워드로 수행되고 있다. 조희정 외(2016)3의 연구는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사례분석을 통해 논증 했다. 또한, 집단지성 이론과 함께 크라우드소싱과 상향식(bottom-up) 정치참여에 관련한 송경재(2012)4의 연구에서는 위키피디아와 다음 아고라의 사례를 통해 집단지성의 특성과 형성에 관한 메커니즘을 분석하였고, 장우영(2012)5의 연구에서는 온라인 공론장인 ‘아고라’와 촛불시위에 관련해 특정이슈가 어떻게 파급되어 의제설정이 이루어지는지 고찰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디자인 영역에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 관점의 연구는 미미한 상태다. 조희정 외 연구에서 다수 청원, 투표∙토론 플랫폼의 한국형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과 시민 주도형 청원의 구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론으로 이끈 것처럼 우리 앞에 열린 정보화 사회, 관계성 패러다임의 시대에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에 대한 디자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1 Pia Mancini. How to upgrade democracy for the Internet era. https://goo.gl/Y8mHrP
2 Judith Fitzgerald. (2001). 『Marshall McLuhan』 XYZpublishing.
3 조희정, 이상돈, 류석진. (2016). 디지털 사회혁신의 정당성과 민주주의 발전. 정보화정책, 23(2), 54~72.
4 송경재. (2012). 인터넷 집단지성의 동학과정치적 함의. 담론 201, 15(3), 127–156.
5 장우영. (2012). 온라인 공론장과 정치참여. 한국정치연구, 21(1), 1–26.